성곽 시설물인 포루, 각루, 공심돈에 대해 설명하겠다. 포루는 치성 위에 지은 군사 보호용 건물이며, 각루는 성벽 모서리에 설치된 치성으로 관측과 지휘에 활용되었다. 그리고 공심돈은 수원화성에만 유일하게 설치된 내부가 비어있는 높은 시설물로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동북공심돈 등 3곳이다. 각 시설물의 구조적 특징과 역사적 의의를 상세히 살펴보겠다.
포루
성서에서는 치성 위에 지은 집을 포라 하였다. 치성에 있는 군사들을 가려 보호하려는 것이다. 즉 치 위에 배치된 군사들을 보호하고, 비바람을 피하며 휴식하기 위해 치 위에 집을 지은 것이 포이다. 수원화성에서는 포가 치 위에 있으면 포루라 하였고, 포가 성안에 있으면, 포사라 구분하였다. 포사는 유사시에 포를 쏘아 신호를 하도록 되어 있다. 군사들이 체재하는 포사 안은 온돌로 되어 있고, 2층으로 된 포루의 출입은 사다리를 통하여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화성에는 동북포루를 비롯하여, 북포루, 서포루, 동일포루, 동이포루 등 5개가 있고, 포사는 중포사, 서남포사, 내포사 등 3개가 있다. 각건대라 불리는 동북포루의 구조를 보면, 치성이 성 밖으로 19.5척이 나왔고, 외면의 너비는 24척이고, 현안을 1개소 뚫었다. 5량으로 집을 지었는데, 판자를 깔아 누를 만들었다. 7 영 3칸이고, 높이는 여장 위로 6.8척이 솟았는데, 전체 높이는 13척이다. 벽등 아래위에 네모난 총안 19개소 누혈 11을 뚫어놓았다. 누의 위 사면은 판무을 설치하고 외변과 좌우에는 사안을 내어 놓았다. 안쪽에 벽돌층계를 설치하여 오르내리게 하였다. 단청은 삼토를 사용하였고, 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각루
각루는 성벽에 부착된 치의 일종으로 모서리 부분에 마련한 치이다. 방형성에서는 모퉁이에 설치하였고 산성 등 자연 지세를 이용한 경우에는 지형 상 돌출되어 관측과 지휘에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특히 평지에 마련된 방형성곽에서는 각루의 역할이 일반 치에 비하여 기능이 더욱 중요한 시설이다. 각루 위에는 건물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치 조사 시에 와편이 많이 조사되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지붕에 기와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각루를 지어 놓음으로 외관을 돋우는 역할도 했을 것이나 유사시 전투지휘의 보조처로도 이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안학궁성에서는 네 모퉁이에 중층의 누각형태의 각루가 보이며, 각루는 그 크기가 일반 치와 비슷하다. 산성 등 자연지형을 이용한 성에서는 장대, 포사 등과 그 역할과 기능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힘들다. 삼국시대 각루의 예로 고구려 국내성, 대성산성의 소문봉과 주작봉, 청주의 정북리토성의 네 모퉁이, 신라의 삼년산성 동북, 서북, 동남 3개소, 단양 온달산성의 북문의 치 등이 보인다. 특히 궁성인 경복궁 좌우모서리에 동십자각, 서십자각이 보이고, 수원화성의 동북각루는 가장 아름답고 호화스러운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공심돈
성벽에 설치한 돈대의 하나로 각루, 포루, 포루가 위치한 곳과 같은 치에 마련한 높다랗게 마련한 시설물로, 내부가 비어 있어 공심돈이라 한다. 공심돈은 조선시대 성곽가운데 화성에만 유일하게 설치되어 있는 시설로 중국의 병서 무비지를 참고하여 화성의 지형조건에 맞춰 축조한 것이다. 화성에 축조한 공심돈은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동북공심돈 등 3곳이다. 현재 남공심돈은 남아 있지 않고, 나머지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만 남아 있다.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성탁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에 있는 계평돈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바깥쪽으로 총안을 뚫어서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겸하게 하였다. 위 구멍은 26개, 아래 구멍은 14개이다. 위아래 덮개판 위는 진흙과 회를 섞어 쌓았다. 아래층 공심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사닥다리를 거쳐 위로 올라가면 위층에 이르게 되어 있다. 그 규모는 기둥 6개를 세웠는데, 길이 12척이고 너비 10척이며,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다. 평평한 여장을 둘렀는데 높이 5척, 위아래에 포혈 23개와 누혈 6개를 뚫어 놓았다. 아래 층 안쪽에는 벽돌로 만든 홍예 모양의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또 문 동쪽으로 공심을 막아서 온돌 한 간을 지어 놓았는데 방안을 창으로 삼아 군사들이 출입하게 하였다.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북치 위에 있다.치에다가 돈을 설치하였는데, 치의 높이 15척, 서북 이면에 각각 현안 2구멍을 내었고, 그 위에 벽돌로 쌓아서 그 속을 비게 하고, 위에다 가로세로 2칸의 집을 지었다. 벽돌로 쌓은 것이 높이 18척, 아래의 너비 사방 23척, 위의 줄어든 너비 사방 21척이다. 상청판과 하청판의 2판을 설치하여 누일 경우에는 2층으로 하고 포일 경우에는 3층으로 하여 층마다 벽돌로 된 면에 불랑기를 쏘아댈 포혈을 내었다. 상층의 벽돌로 된 면 위쪽은 판자로 둘렀으며 문마다 각각 전안을 뚫었다.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고 대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중층과 상층에는 각각 청판을 여는 사방 3척의 덮개 판 하나를 만들어, 밀고 당겨서 열고 닫게 하여 나무사닥다리로 된 오르내리는 길과 통하게 하였다. 아래 층 안쪽에는 벽돌로 된 홍예 모양의 작은 문을 내었다. 남공심돈은 남암문의 동치 위에 있다. 그 제도는 모두 서북공심돈과 같으나 약간 작다. 치의 동남 두 면에 각각 현안 둘을 내었고, 위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였다. 면마다 2개의 총안을 뚫어 놓았다. 장 내 3면에는 각각 3척쯤의 공간을 두어 군사들이 기예를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한 가운데에 돈을 벽돌로 쌓고, 그 가운데는 비웠다. 아래 너비 사방 13척, 위의 줄어든 너비 사방 10척, 벽돌 안 3층의 전체높이 16척 5촌, 벽돌 위에 한 칸짜리 집 한 채를 지었는데 판문은 설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성곽의 시설물인 포루, 각루, 공심돈에 대해서 알아보았다.